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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가져...

기사승인 2019.03.05  13: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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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서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 관하여 전하는 전광훈 대표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전광훈 대표회장은 인터뷰를 통해서 올해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서 3·1운동을 촉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 관하여 전했다.

"3·1운동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본질을 다루고 싶다"며 입을 연 전 목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독교인으로서 3·1운동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전 목사는 3·1운동의 직접적 동기에 대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제28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우드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접하고 '모든 민족은 스스로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한국의 4개 독립운동 단체를 모두 움직여 '언젠가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적인 반응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부탁이 3·1운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전 목사는 '3·1운동은 민족 독립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현상적으로는 실패했지만 3·1운동 뿌리가 된 기독교 정신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화될 위기의 상해임시정부를 지켰다'고 했다.

또한 ‘해방 전의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보다도 더 큰 업적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상해임시정부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낸 것이며, 기독교인이었던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독립자금을 모금해 상해임시정부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고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 이전에도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전 목사는 “암울했던 1880년대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조선에 와서 한 3가지는 크게 학교, 병원, 교회를 짓는 일이었다. 이를 통한 신학문 전파야말로 조선을 구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 말하면서 "한국 교회는 민족을 개화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했는데 사실 독립운동에 나섰을 때가 135년 한국 기독교 역사 중에 교회가 가장 부흥했을 때이다"라고 설명했다.

전 목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물론, 김구 안창호 이상재 조만식 선생에 좌익 핵심이었던 여운형 김규식 선생까지도 신앙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라고 말하며 대한민국 건국 주역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 목사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면서 교회가 오히려 예전 같은 생동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뜻깊은 해에 이제 교회도 다시 100여 년 전의 애국심과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 다음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인터뷰 전문이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이라고 하면 대부분 태극기 물결과 흰옷을 입은 조선 백성들이 일제의 총칼 앞에 스러져 간 평화적이지만 비극적인 독립운동을 연상한다. 하지만 3·1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이 땅에 깊게 뿌리내린 한국 기독교이다.

3·1운동을 촉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듣기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전광훈<작은 사진> 목사를 만났다. 전 목사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통해 듣는 한국 근현대사 속 기독교 활약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흥미로웠다.

◇기독교인 이승만의 민족자결주의와 3·1운동

전 목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본질을 다루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독교인으로서 3·1운동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다"고 했다.

전 목사에 따르면 3·1운동의 직접적 동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나중에 제28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우드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접하고 '모든 민족은 스스로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전 목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의 4개 독립운동 단체를 모두 움직여 '언젠가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적인 반응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부탁이 3·1운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3·1운동으로 민족정신 무장

전 목사는 '3·1운동은 민족 독립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현상적으로는 실패했지만 3·1운동 뿌리가 된 기독교 정신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화될 위기의 상해임시정부를 지켰다'고 믿고 있었다.

"해방 전의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보다도 더 큰 업적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상해임시정부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낸 것입니다. 기독교인이었던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독립자금을 모금해 상해임시정부에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전 목사에 따르면 3·1운동 이후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 한인학교에 본부를 두고 사탕수수밭에 일하러 온 7000명 가까이 되는 조선인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며 해외에서도 3·1운동을 계승하려 애썼다고 한다.

1969년 3월 1일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의 교회에서 3·1절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다. /조선일보 DB

◇학교-병원-교회 건설로 조선을 밝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전에도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1880년대 최초의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고통이 체질화됐을 만큼 참혹한 조선인들의 삶을 일기장에 적었다. 언더우드는 "그 고통을 벗겨 주려고 가까이 가면 '서양 귀신이 온다'고 하며 도망간다"고 적어 당시 조선 백성들의 분위기를 생생히 묘사했다.

전 목사는 "그렇게 암울하던 1880년대의 조선에 와서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한 3가지는 크게 학교, 병원, 교회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한 신학문 전파야말로 조선을 구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교회는 민족을 개화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했지요. 사실 독립운동에 나섰을 때가 135년 한국 기독교 역사 중에 교회가 가장 부흥했을 때입니다"라고 전 목사는 설명했다.

전 목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물론, 김구 안창호 이상재 조만식 선생에 좌익 핵심이었던 여운형 김규식 선생까지도 신앙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며 대한민국 건국 주역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제 교회도 다시 예전과 같은 영향력 회복해야!"

교회는 한국 청년들에게 청년 공동체와 회의 문화를 가르친 주역이었다. 전 목사는 "회장-부회장-총무-서기를 기본으로 하는 조직 문화는 교회 청년회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교회 청년회를 통해 국민의 약 1/4가 일주일에 한 번씩 종교적인 지식 외에도 고차원적인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 자체의 영향력을 높였을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자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전 목사는 이렇게 1800년대 조선 상륙부터 3·1운동, 새마을운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할을 해 온 한국 교회가 1980년대부터 다소 힘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전 목사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면서 교회가 오히려 예전 같은 생동감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뜻깊은 해에 이제 교회도 다시 100여 년 전의 애국심과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7/2019022701683.html

뉴스타겟 isa05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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